생존영어(Survival English)란?

보통 우리는 한국 영어 학습의 병폐를 말하면서, 외국 나가서 “영어 한 마디 못 한다”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과연 그것이 그렇게 중요할까? 만약에 내가 외국에 나갈 일이 없다면, 굳이 그것이 그렇게 문제가 될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어의 용도는 다양합니다. 단순히 영어로 쓰여진 글로부터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그에 더해서 영어로 자신의 생각/주장을 펴는 것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의 경우는 업무 처리 과정에서 외국인들과 영어를 사용해서 협업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과연 모든 사람이 원어민처럼 영어로 말하고 쓸 줄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회의감이 듭니다.

그럼 “생존 영어”란 과연 무엇일까요?

한국의 영어 교육의 시작은 70-80년대 이전부터 시작된 이민자 대상의 회화 교육이었습니다. 당장 미국에 이민 가서 길 찾고, 물건 사고해야 하기에 그러한 종류의 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저도 실제 80년대 원어민 회화 수업을 들었을 때 그러한 교재들로 배운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외국에 나와서 생활하던 분들은 대부분 청소, 세탁소, 주유소, 컨비니언스 스토어 (구멍 가게) 등에서 일을 하다가 돈을 모아서 해당 사업체를 차리게 됩니다. 그 분들은 생존을 위해서 영어를 했고, 본인의 업무 영역에서는, 그리고 미국 생활에서 살아가는데 최소한 필요한 영어를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터득하게 되지요. 발음도 좋고, 손님 응대도 잘 하고……하지만, 그 이상의 대화는 힘들지요. 딱 거기까지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익힌 영어를 가지고 어떤 시사적인 현안이나 학문적인 영역에서의 내용을 알아듣고 표현하는 데는 분명히 큰 한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해외에 나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에게 과연 생존 영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살면서 외국인들과 협업을 하는데 영어가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것은 단순히 생활영어를 말하는 것은 아닐 겁니다. 자신의 업무 분야의 내용을 말과 글로 정확히 풀어내는 능력을 말하겠지요. 마찬가지로 해외에 유학을 간다고 해 보면, 물론 “생존 영어”가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배우러 간 내용을 성공적으로 마칠 때까지 많은 리포트를 정확히 쓸 수 있는 쓰기 능력과 presentation 시간에 정확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말하기 능력일 겁니다.

설령 해외에 나와서 산다고 해도, 주위 사람들과 영어로 인맥을 구축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결국 깊이 있는 대화를 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현안들에 대해서 영어로 풀어내는 능력이 있어야겠지요. 안 그러면, 매일 얼굴 보고 “How are you?” “Fine, thank you”하는 선에서 끝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능력을 기르는 것은 주로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해야 가능한 것입니다.

제 주위에 여러 해 전에 이민 와서 자식들 대학 다니는 아는 분들이 좀 있습니다. 한 3-4년 지나면 발음부터 현지화되기 때문에 영어 말하는 것 보면 저도 부러운 생각이 가끔 들어요. 그런데, 이따금 저에게 “아이가 ‘Business Writing’과목에서 점수가 안 나와서 고민이다. 한번만 줄 수 있나”고 부탁하는 분들이 있어서, 아이 보고 제출한 리포트 가지고 와 보라고 해서 보면요, 딱 그러한 부분에서 문제가 보입니다.

그것은 원어민도 마찬가지고요. MBA과정에서 프로젝트를 같이 하다 보면, 서로 자신이 맡은 부분을 써서 취합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 경우 보면, 유난히 글을 잘 쓰는 원어민이 있는가 하면, 말은 되는데 좀 어색한 전개가 보이는 친구들이 있지요. 대부분 그 사람의 이전 전공이나 경력과 관련이 많아 보였습니다.

오늘날의 “생존 영어”는 더 이상 과거 이민자들이 이민 가기 전에 공부했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세계의 주요 현안을 전반적으로 다룰 수 있고, 자신의 분야에서 깊이 있는 말과 글이 가능한 것이 “생존 영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혹시 해외 나가서 식당에서 주문할 때 좀 버벅거리더라도 자괴감을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꼭 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