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가 올해 합격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제가 올 한해 열심히 준비하면 합격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이, 학원에서 12년을 가르치면서 첫/초반 상담에서 아마도 가장 많이 받아본 질문일 겁니다.
통번역 대학원 입시를 지도하는 입장에서 가장 답하기 난감한 질문이고, 입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가장 궁금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원론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열심히 하시면 가능할 겁니다.”라든가, “제가 점쟁이가 아니라서…”

과거 제 스터디 파트너의 경우는 3수를 넘어 4수째라서 많이 궁금했던가 봅니다. 설날에 점쟁이를 찾아가 묻더군요.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더니, “그 X의 점쟁이가 안 된데요…”라며 씩씩거리더군요. (그런데, 안 됐어요ㅠㅠ)
통번역대학원 입시는 고시나 수능과 다릅니다. 고시나 수능의 경우 봐야 할 책과 범위가 정해져 있지만, 기본적인 언어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는 통번역의 경우 그 범위라는 것이 모호합니다.
때문에, 학생들은 학원에서 자신이 듣는 ‘반’을 기준으로 판단하기도 합니다. 고급반을 들으니 나는 올해 가능하겠지 라는 식으로요. 물론, 높은 반에는 잘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이 있기 때문에 확률상 맞는 말이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떨어지는 입장에서는 ‘모’아니면 ‘도’이니 그 확률이라는 것이 큰 의미는 없는 셈입니다.
실제로 고급반을 듣는 학생들 중에 본인의 실력이 출중하기 보다는 단순히 반의 수업 방식에 적응되어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축구장에서는 1분도 못 뛰는 사람이 축구 해설과 경기 분석을 잘하는 경우라고 볼 수 있겠지요. 문제는 통번역이라는 분야는 본인이 직접 뛰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지요.
축구를 예로 들자면, 프로 선수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전후반 90분을 전력으로 뛸 수 있는 체력이 있어야 될 겁니다. 그리고 볼을 원하는 대로 찰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겠지요. 최소한의 이런 능력이 있을 후에 본인의 특기를 기르고 그것이 클럽 관계자의 눈에 띄어서 발탁이 되는 수순을 밟게 될 겁니다.

그런 기본적인 능력이 안 된 상태라면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뵈야겠지요.

통번역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통역의 경우 들리는 우리말/영어의 내용은 이해하는데 불편함이 없는 언어 실력이 되어야겠지요. 또한, 들은 내용을 우리말/영어로 다시 옮기는데 부족함이 없는 실력도 필요할 겁니다. 번역의 경우라면 동일한 원칙이 읽고 쓰는 것에 적용이 되겠지요.
이러한 실력이 갖춰진 경우, “올해 열심히 하면 들어갈 수 있는” 수준인 것입니다.
제 경우를 말씀 드리자면, 재수를 하지 않고 들어가기는 했지만, 막상 학원을 다니며 통대 입시를 준비한 것은 거의 3년이 됩니다. 그 기간 동안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 많게는 15시간 정도 영어만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그 3년을 시작하기 전의 실력을 말하자면 완전히 초보는 아니었습니다. 영어 관광 가이드 자격증을 따고 파트 파임으로 일을 약 1년 반 정도 한 때여서, 버스에서 마이크 잡고 1-2시간은 한국 문화, 역사, 정치, 경제 등에 대해서 떠들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고, 대학에서 타임지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이미 2년 이상 매주 타임지를 절반 이상 정독을 해 온 상태였습니다.
그러니까, 3년이라는 시간은 저에게 부족한 영작 실력과 그리고 그 전에 가지고 있던 실력을 바탕으로 통대 입학에 필요한 실력을 채우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시를 본 후에 마음속으로 재수를 준비할 만큼 자신이 없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요즘은 영어에 대한 노출이 어릴 때부터 이루어지니 아마도 입시생들에게 요구되는 수준이 저 때보다 오르면 올랐지 낮지는 않을 겁니다.
통번역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면, 먼저 본인의 실력에 대해서 현실적이 되기 바랍니다. “선생님, 제가 올해 될까요?”라는 질문을 강사에게 해도 별로 크게 도움이 되는 답을 듣기는 어려울 겁니다. 앞에 대놓고, “학생은 아주 못하니 앞으로 5년은 걸릴 것 같다.”라고 말 할 수 있는 배짱 있는 강사는 없습니다. 그리고, 강사의 입장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되는 경우도 간혹 있습니다. 그 경우는, 그 학생의 강점이 수업 시간에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지요.
한 가지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일단 통대입시 관련 수업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통역이라면 수업 시간에 발표를 가장 잘 하는 사람, 번역이라면 강사가 크리틱 대상으로 올리는 학생 번역 중에 가장 잘 된 것을 기준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대부분 그러한 잘 하는 학생들이 당해년도에 합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과 나와서 거리를 최대한 냉철하게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한 2년 공부하면 그렇게 되겠다라고 판단이 된다면 그 정도 혹은 그 보다 조금 긴 기간이 소요될 겁니다.
제 경우를 말하자면, 제 입시 준비 3년 중에 1년이 좀 안 되었을 때, 당시 같은 선생님 수업을 듣고 통대에 합격했던 김민식씨(요즘 고생이 많은 MBC 피디)와 같이 스터디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받은 느낌은 ‘내가 저 정도 되려면 1년으로는 어렵고, 한 2년은 열심히 해야 되겠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행이 예상대로 2년 후에 본 시험에서 합격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때의 몇 번의 스터디는 입시 초기의 저에게 아주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입시 결과 발표를 앞두고 이런저런 고민들이 많을 겁니다. 결과 발표 후, 만약에 다시 한번 도전을 해 볼 생각이라면, 올해 같이 준비했던 학생들 중에 합격한 학생들과 나와의 거리를 냉정하게 판단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거리를 좁히는데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간 혹은 그보다 좀 더 긴 시간이 합리적인 준비 기간이 될 겁니다.

길을 가는데, 목적지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모른 채 길을 가는 것만큼 지치고 힘든 것은 없습니다. 최대한 본인의 목표에 대한 분명한 거리감을 가지고 최대한 열심히 질주해 나가기 바랍니다. 목적지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다만, 가는 사람의 마음이 바뀔 뿐이지요. 목표를 향해 노력하시는 분들 모두의 성공을 기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