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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파”에 대한 환상과 “국내파”

지난 글에서 통번역 대학원 입시의 가장 중요한 요건으로서의 언어 능력에 관해서 이야기 했는데요. 잘 닦여진 언어 능력 덕분에 짧은 준비 기간 만으로 합격을 했던 “해외파” 학생들의 예를 들었습니다.

아마도 어릴 적에 영어권에 못 나가보신 많은 분들이 “역시나…언어는 어릴 적에 모국어처럼 배워야…”라고 생각하시면서, 어린 시절의 “불우함”을 탓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해외파”에 대해서 정의를 내려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가 부러워하는 “해외파”의 조건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영어와 우리말을 모국어 수준”으로 하는 경우를 말할 겁니다. 통번역에서는 이러한 경우를 “true bilingual”이라고 합니다. 왜 “true”라는 표현이 붙는가 하면요, 가짜가 많기 때문입니다. 통번역에서 말하는 진정한 이중언어 사용자의 경우는 유럽 등에서 볼 수 있는 다중 언어 사용 지역 거주자들 출신들이 많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두 언어권을 주기적으로 오가면서 생활한 경우에 가능할 겁니다.

어릴 적에 여러 언어권을 거친 사람들 가운데, 모국어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통번역 공부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경우가 드물지만 실재로 존재합니다.

제가 아래 적은 “조기유학과 영어습득”이라는 글들을 보시면요, 외국에 어릴 적에 나간다고 저절로 언어가 느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또한, 맥도날드에서 주문하는 언어와 통번역에서 필요한 언어는 그 수준과 내용에 있어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것 역시 통번역 입시를 어느 정도 준비하신 분들이라면 아실겁니다.

통역의 경우, 해외파들의 경쟁력이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영어 발음이 좋기 때문에 좋은 인상을 주게 됩니다. 또한, 잘 훈련될 경우, 이해된 부분에 대해서 빠르게 뱉어내는 순발력 역시 두드러집니다. 또한 영어 표현이 아무래도 부드럽습니다. 특히 전문적인 내용 중간중간에 일상적인 내용을 통역할 때 아주 부드럽게 나옵니다. 한영 통역을 이 정도 하려면, 최소한 중고등 교육 정도를 해외에서 받았을 겁니다.

문제는 거기에서 발생하지요. 영한 통역에서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특히 높은 register를 요구하는 영한 통역 시에 우리말이 꼬이는 일이 발생합니다. 또한, 오랜 해외 거주로 인해서 한국어 발음에 영어 엑센트가 심하게 섞이는 경우도 생기지요. 이 부분이 한국의 통역 시장에서는 큰 단점으로 작용합니다. 왜냐면, 한영/영한 통번역의 가장 큰 시장은 한국이고 대부분의 고객은 한국인고, 한국 고객들은 유창한 영어 발음을 선호하는것 못지 않게, 버터 냄새 나는 한국어 발음에 대해 심한 거부감이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한 “해외파”들이 있는데, 그 분들은 “국내파”가 영어에 들이는 노력 못지 않게 우리말에 엄청난 노력을 한 분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TV나 국제 회의 등에서 보는 영어와 우리말 발음이 좋은 실력 있는 “해외파” 통역사는 그러한 자리에 오르기까지 아주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이지요.

번역의 경우는 상황이 좀 더 다르지요. 일단, 해외파가 갖는 영어 발음의 장점을 내세울 수가 없고요. 한영 통역에서 나오는 “순발력”의 장점 역시 크게 부각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해외파가 갖는 장점이 상당 부분 줄어들게 됩니다.

특히 해외파들이 애를 먹는 부분이 영한 번역 부분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인들은 영어 학습에 대단히 관심이 많지요. 그리고 영어 회화나 청취는 어려워해도 “독해” 정도는 한다고 다들 자부합니다. 때문에, 영한 번역의 경우 “나도이 정도는 하는데, 바빠서…”식의 생각으로 맡기는 경우가많고요. 번역을 받고 나면, “매의 눈”으로 크리틱을 시작합니다. 해외파들이 클레임 걸리기 딱 좋은 구조이지요. 특히 번역의 경우는 오역을 하거나 이상한 표현이 증거로 그대로 남기 때문에 피곤합니다. 변명의 여지도 없고요.

한영 번역 경우 역시, 아무래도 번역 텍스트가 구어체인 통역 텍스트보다 많이 복잡하고 난해하기 때문에, 분석에 어려움이 발생합니다. 또한, 우리말의 뉘앙스를 놓칠 수 있고, 세밀한 의미 전달이 필요한 부분에서 실수가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잘 하기 위해서 너무 많은 시간이 들어가는 경우들도 있고요. 그 경우 수익성이 떨어집니다.

아마도 이렇기 때문에 번역 분야에서의 오히려 순수 국내파들의 비중이 통역 분야보다 높은 것이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해외파들 가운데도 번역을 잘 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경우 역시 본인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래 “퓰리처상을 받은 국내파 기자”라는글을 보시면, 국내파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보실 수 있습니다.전문 통번역사가 될 정도로 영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우주 정복” 정도로 대단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말이 확실한 모국어로 자리잡은 상황에서 몇 년 정말 집중해서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입시 지도를 하면서, 빠르게 실력이 느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최근에 출판된 "영어책 한권 외워봤니?"라는 책이 있습니다. MBC의 김민식 PD님(아래 사진)이 쓴 책입니다. 저자와는 작은 개인적인 친분도 있고, 무엇보다 외대 통번역 대학원 2년 선배십니다. 순수 토종 영어의 모범이라고 할 정도로 깔끔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을 여러번 직접 봤기 때문에 저자의 영어 실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제가 보증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저 책에는 본인의 엽기적이고(?) 자전적인 학습법이 들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민식 피디

때문에, 어릴 적에 조기 유학 보내 주지 않은(혹은 못한) 부모님 탓을 안 했으면 합니다. 대학 때 교환 학생 못 갔던 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습니다. 제가 아는 분 중에는 30대에 영어 기본 문법 시작해서 통역대학원 나오신 분도 계시고요. 순수 국내파인데 원어민 못지 않은 영어 발음을 지닌 친구도 있습니다. 그렇게하기 위해 고막이 상할 정도로 영어 방송을 듣고 다녔기는 했지만요.TT

결국 “해외파”이건 “국내파”이건 부족한 것이 있고,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부분은 둘 다 만만치 않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당장 시간이 날 때마다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언어 공부에는 끝이 없겠지만, 통번역사가 될 정도의 합리적인 실력수준까지는 분명히 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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